왱이집 콩나물국밥
Posted 2011. 8. 18.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
요즘은 대개 어딜 가기 전에 블로그 검색을 통해 그 지역에 대한 각종 정보를 어느 정도 살피고 움직이게 된다. 그러면 어디어디를 가고, 무엇무엇을 먹을지 대강 견적이 나온다. 20시간 남짓 머문 전주에서 전주비빔밥(가족회관), 가맥집(전일슈퍼), 콩나물국밥(왱이집), 베테랑분식의 칼국수를 먹었으면 했는데, 마지막 거만 빼고 맛집 순례를 잘 했다.
화요일 늦은 아침 그러니까 브런치 격으로 찾은 왱이집은 한옥마을에서 걸어갈 수 있는 콩나물국밥 골목에 있었는데, 간판은 좀 촌스러웠지만 맛집에 꼭 필요한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어서 문제가 안 됐다. 콩나물국밥에도 육수가 필요하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밥 먹고 계산하면서 여주인에게 어떻게 만드냐고 했더니, 장사 수십 년에 육수 비법 묻는 사람 처음 봤다면서도 흔쾌히 영업 비밀 몇 가지를 일러 주었다.
실내는 제법 넓었는데, 뒤로 별관이 따로 있었다. 콩나물국밥으론 첫 손가락에 꼽히는 집이어서 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는데, 우린 <혼불>의 작가 최명희 문학관 구경을 하고 아침 10시 반쯤 갔더니 다행히 자리에 여유가 있었다.
이렇게 식사 때를 피해 가면 여유 있게 자리해서 바로 먹는 장점도 있지만, 맛집 특유의 바글바글하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기다리는 잔재미는 누리기 어렵다. 복불복이다. 그래도 딱 아침과 점심 중간 시간이고 평일인 점을 감안하면 이만한 손님도 적은 건 아니었다. 무엇이 이 집을 소문나게 만들었을까?
메뉴는 5천원 짜리 콩나물국밥 하나다. 재료가 소박하긴 하지만 그래도 손꼽히는 전주맛집인데 가격이 참 착하다. 일단 맘에 확 들었다. 반주로 마시는 모주는 도수 1.5% - 무알코올에 가깝다 - 의 전주 약술인데, 도착한 첫날 밤에 숙소옆 구멍가게에서 한 병 사서 이미 맛을 본 바 있어 시키지 않았다. 계피맛 나는 걸죽한 건강 음료였다.
자리에 앉으면 반찬 3종 세트를 내오는데, 잘 익은 김치와 열무김치를 양푼에, 깍두기와 오징어젓갈이 적당량 담겨 나온다. 김치가 셋인데, 하나같이 맛이 괜찮았다. 아직 메인은 나오지 않았지만, 기대감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얼마 안 지나 드디어 콩나물국밥과 수란이 나왔다. 서울에선 보통 계란이 국밥에 풀어 나오는데, 전주는 이렇게 수란을 주나 보다. 국물은 맑고 시원했다. 간도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게 적당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심심한 맛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는 펄펄 끓여 나와 후~후 불어가며 먹는데, 여긴 온기가 적당한 게 그냥 떠먹기에 적당했다.
콩나물은 불순한 구석 없이 아삭아삭 씹히는데, 나오면서 보니까 주방 바닥에서 할머니 한 분이 콩나물을 한 다라야 놓고 다듬고 계셨다, 원래 그분 담당인진 모르겠지만, 남들에겐 허드렛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가장 중요한 재료를 숙련공(^^)이 맡고 있다는 점도 이 집에 믿음이 가게 만들었다. 모름지기 맛집엔 이런 가오가 있어야 한다.
내가 손에 뭘 묻히길 싫어하는 샌님이라 김을 잘게 잘라 넣지 않고 대충 넣었더니 비주얼은 좀 별로가 됐지만, 수란 맛도 좋았다. 국물을 몇 숟가락 떠 넣고 저어서 먹으니 비리지도 않고 나름 별미였다.
이렇게 맛과 가격에서 고루 미덕을 갖춘 음식에 대한 예의는 국물 하나 남김없이 깨끗이 비워주는 것이다. 사실 화요일 오전 전주 날씨는 한여름 폭염이 내리쬐는 무더위라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고 지치기 십상이어서 아침부터 뜨끈한 국물 음식을 먹는 게 어찌 보면 부담일 수 있는데, 이집 음식은 마치 배고픈 식객을 반겨주기라도 하듯 남길 게 없었다.
식사는 끝났지만 이 집 칭찬을 좀 더 해야겠다. 테이블에 놓인 휴지가 두루마리나 형광 처리한 냅킨이 아닌 마트에서 파는 브랜드 각휴지였다. 식당 휴지 치고는 단가가 제법 나가는 고급이었다. 마무리까지 제대로 손대접하려는 이 집의 자존심이 느껴졌다.
계산대 옆에는 튀밥 포대가 놓여 한주먹씩 집어 먹게 하고 있었다. 종이컵을 사용해도 안 되고, 양 손을 사용해도 안 되고, 딱 한 주먹씩만 집으라는 위트 있는 멘트와 함께. 이 집의 점수는 5점 만점에 4.5점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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