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무봉리 순대국
Posted 2012. 3. 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I'm wandering > 百味百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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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10년 이상 된 오래된 물건 가운데 한 주일에 한 번은 변함없이 손이 가는 유용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물통이다. 94년에 하남으로 이사 온 다음엔 줄곧 차로 3분 거리의
검단산 줄기 동네 약수터에서 물을 떠다 먹었고, 그때마다 양손에 하나씩 생수통을 들고 갔다.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 같은 땐 조금 귀찮기도 하지만 운동삼아 계속하고 있다.
보통은 10리터 짜리를 많이 쓰는데, 저 바이오 생수통은 12리터 들이다. 저 통이 좋은 이유는,
생수 한 병 분량인 2리터가 더 담긴다는 실용성뿐 아니라 한쪽에 수도꼭지가 달려 있어 물을 따라
먹기가 아주 편하기 때문이다. 이게 없으면 물통을 들어 부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흘리기도 하고 조금 불편한 구석이 생기게 마련이다.
언제 샀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는데, 10년은 족히 되지 않았나 싶다. 몇 해 전에 쓰다가 돌출된
손잡이 부분이 부러져 나갔지만, 꼭지 돌려 사용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저 한 통이면 사나흘은
충분히 먹는데, 기왕 가는 거 두 통씩 받아오니까 보조로 다른 생수통이 필요하다. 똑같은 게 하나
더 있으면 편할 것 같아 마트나 인터넷으로 찾아봤지만 꼭지 안 달린 10리터나 20리터 들이는
많은데, 요즘 이 제품은 단종이 됐는지 구할 수가 없다.
그래서 10리터 들이를 쓰다가 마트에서 5리터 들이 병이 있길래 요즘은 이렇게 둘 합쳐 17리터씩
떠다 먹고 있다. 5리터 병은 종종 빈 배낭에 넣고 가 검단산 곱돌약수터에서 하산할 때 받아 오는 데
요긴하게 쓰인다. 요즘같은 겨울철엔 물을 덜 먹지만, 한여름이 되면 찬물도 많이 찾고, 얼음도
얼려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17리터 갖고는 사나흘밖에 못 버틴다. 그냥 10리터 들이을 살 수도
있지만. 저 12리터 꼭지 달린 게 혹시 재고로라도 어디 있는지 한 번 더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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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이 아니었으면 달이 바뀌어 3월이 되어 있을 텐데, 그러면 주일
보내고 이틀 만에 다시 돌아온 휴일을 룰루랄라 즐기고 있을 텐데, 2월을 하루 더 살게 됐다.
요맘때가 겨울의 끝자락임은 산에 다녀보면 알 수 있는데, 열흘 전 검단산에는 아직 눈 덮인
곳들이 제법 눈에 띄더니, 그저께 모락산 산책길엔 이미 싹 녹아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겨울산은 눈도 좋지만, 이파리들을 다 떨어뜨리고 가지만 남긴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받을 수 있어 좋고, 사계절 중 유일하게 멀리서도 능선이 보여 좋다. 무성한 숲에 압도된
채 무심코 걷기만 하던 산이 대강 어떤 모양새인지 짐작할 수 있어 한결 산과 가까워지는
느낌을 주는 계절이기도 하다.
한두 달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봄날의 따스함과 노곤함을 즐거워하면서 새 잎을 내는
신록을 노래하겠지만, 그래도 연중 제일 하기 싫으면서도 막상 걸음을 떼면 그만큼 충분한 보상을
준비해 놓는 겨울 산책이 다시 그리워질 것이다. 오늘로 세 계절, 열 달 지나야 다시 찾아올
겨울산들과는 잠시 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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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 로즈마리가 파마하러 미장원에 갔다가 좋은 정보를 들었다며 전화로 사과를 한 상자 주문했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런 정보에 둘 다 거의 귀를 주지 않는 편이라 우리집에선 흔한 일이 아니었는데, 이번엔 뭔가 괜찮을 것 같단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혹시 기대에 못 미쳐도 과일이니까 큰 손해는 아닐 것으로 둘 다 생각했다.
다음날 바로 배달된 아침에 사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경북 의성 사과인데, 10kg 상자에 제법 큰 크기로 때깔이 좋은 게 위 아래 18개씩 35-36개가 들어 있었다. 택배비 포함해 4만 5천원이니 개당 1천원이 조금 넘는데, 슈퍼나 마트에서 너댓 개씩 봉지로 사 먹는 사과도 이보다 비싸면 비쌌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친환경 저농약 사과라 껍질째 먹을 수 있는데, 당도와 산도가 적당한 게 맛이 보통 이상은 되는 것 같아 지난주에 다시 주문했고, 장모님이 가 계신 언니네도 한 상자를 보내는 것 같았다. 아침 먹으면서 두세 조각 먹고, 저녁 먹은 다음에 TV 보면서 서너 조각을 먹기에 딱인데, 베란다에 두세 주 그냥 둬도 푸석해지지 않고 오래 아삭아삭한 게 우리에겐 안성맞춤이었다.
며칠 전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고 오다가 길가 과일가게에 껍질째 먹는 사과 상자가 쌓여 있어 값을 물어봤더니 15kg 한 상자에 십만 원이 조금 더 나간다고 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50개가 조금 넘게 들었지만 한 개에 거의 2천원 꼴이니 결코 싼 게 아니었다. 그러고보면 이 아침에 사과는 맛이나 값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데, 오랜만에 로즈마리가 한 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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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저녁으로 커피 한 잔씩 내려 마시다 보면 다른 차 마실 일이 별로 없는데, 그래도 가끔 차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럴 때 마시는 차가 보이차다. 이 차의 주산지인 중국 운남성에 사는 동생이 몇 해 전부터 가끔 하나씩 주어서 마시게 됐는데, 원반처럼 생긴 단단한 차 덩어리에서 조금 떼어서 빈 차통에 넣어두어었다가 반 스푼 정도씩 떼어 우려 마신다.
우려낸 첫 잔은 버리고 둘째 잔부터 마시는데, 원래는 작은 종지 같은 찻잔에 여러 번 따라 마시지만, 조금 감질나기도 하고 워낙 머그컵에 길들여져 있어 그냥 머그에 잔뜩 따라 마신다(보이차 마니아들에게 무식하다며 돌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집에서는 끓일 때 아예 많이 끓여 페트병에 담아 물처럼 마신디고도 하는데, 그보단 나은 것 같다.
차는 물과 온도가 중요하다는데, 딱히 음미할 만한 수준이 아니어서 제대로 된 차맛을 모른 채 그냥 커피처럼 마신다고 보면 되겠다. 물을 리필해 다시 우려낼 때마다 차 색깔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두세 잔이 되도록 차 색깔과 향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어떤 땐 마실수록 살짝 몸에서 땀이 난 적도 있다.
아침 저녁 황금시간대는 커피에 밀려 오후에 마시는 차가 됐지만, 계속 그러할지 아니면 차 마시는 취향에도 변화가 생길지 모를 일이다. 커피에 길들여진 코와 입맛이 쉬 바뀔 리야 없겠지만, 커피 원두가 몹시 비싸진다든지, 건강 등의 이유로 커피를 줄이고 다향(茶香)에 끌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생산지에서는 그리 비싸지 않다는데, 한국에선 조금 비싼 차로 알려져 있어 종종 커피 안 마시는 손님이 오면 대접하곤 하는데, 보이차 싫다는 사람은 아직 못 봤다. 심심해서 집에 남아 있는 걸 꺼내보니 모두 운남성에서 재배한 것 같은데 이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건지 도통 모르겠다. 다음달에 동생이 오면 보이차 공부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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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에 비해 두세 주 앞당긴 성급한 날씨 때문에 산길에도 봄이 성큼 찾아오고 있다. 아직
2월 말이라 잔설이 제법 남아 있어야 할 때지만, 모락산은 동서남북 어느 능선이나 거의 눈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비교적 햇볕을 덜 받았을 북사면마저 온난한 기운에 영향을 받아 흙땅과
마른 나뭇잎들을 원래 모습 그대로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사인암으로 오르는 계단들도 나무 밑 구석진 곳만 눈이나 얼음이 살짝 남아 그 존재를 알릴
뿐이다. 한겨울 큰 눈이라도 내린 다음엔 아이젠을 끼고 조심조심 오르내려야 했을 발걸음이
아무것도 개의치 않아도 될 만큼 흙속에 얼어 있거나 눈 쌓인 공간이 줄어들고 거의 사라졌다.
녹으면서 질퍽거리기라도 해야 하는데, 세력이 약해 그것마저 여의치 않은가 보다.
길옆 마른 나뭇잎들이 바람에 쓸려 한데 엉겨 있는 곳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한두 주 전만
해도 수북하진 않더라도 군데군데 눈이 덮여 있거나 얼어 붙어 있었는데, 이번주엔 도대체 언제
그랬냐는듯이 눈이 싹 녹아버리고 게으른 녀석들만 아주 조금 남겨놓았다. 봄비라도 내리거나
이런 날씨가 며칠 더 계속되면 그마저 남김없이 사라질 것이다.
산에서 눈을 못 보게 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역시 봄이 오면 생기가 돋고 풍경이 바뀌면서
아무래도 움추러들었던 겨울철보다 산을 찾아 나서는 발걸음도 경쾌해지고 횟수도 늘어날 것이다.
눈길을 걷거나 설경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흥과는 또 다른 느낌과 생각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눈길은 눈길대로, 새싹은 새싹대로, 녹음은 녹음대로, 단풍은 단풍대로, 낙엽은 낙엽대로
좋아하니 천상 I'm a Pedestrian!
코스트코 냉동식품 코너엔 아이스크림이 두세 종류 있는데, 그 중 이 회사 브랜드인 커클랜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있다. 반 갤론 짜리니 2리터가 조금 안 되는, 미국에선 가정용이겠지만, 한국에선 업소용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아이스크림 통치곤 꽤 큰 편이다. 이걸 두 개 묶어 파는데, 만원은 넘고 2만원은 안 된다. 무척 착한 가격이다.
양이 많다는 건 좋기도 하지만, 은근히 부담스럽기도 하다. 워낙 단단하게 얼어 있어 냉동실에서 바로 꺼내면 잘 떠지질 앉는데, 처음엔 불편하게 여겼지만 곧 앉은자리에서 많이 먹는 걸 방지하는 순기능으로 받아들였다.^^ 아이스크림 스쿱이 있으면 조금 수월하게 풀 수 있겠지만, 그래도 단단하게 얼어 있고 엉겨 있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이럴 땐 비행기에서 가져온 숟가락이 딱이다. 국적기는 약하고, 90년대에 가져온 싱가폴 항공 게 안성맞춤이다.^^
프리미엄급에 하나 더 붙여 슈퍼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이라니 맛은 웬만한 아이스크림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코스트코 제품은 다 미국제인 줄 알았더니 아닌 모양이다. 호주에서 만들고 영국에서 배급하는 것을 국내로 들여와 파는 것인데, 웬지 호주산이라니까 좀 더 괜찮을 것 같다는 편견이 생긴다.
용량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유지방(Milk Fat)이 16%라는 것이다. 동네 슈퍼나 마트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 6% 정도니까 얼마나 달고 고소한 맛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배스킨라빈스나 하겐다즈 같은 전문점에서 파는 것도 유지방이 이 정도가 될지 모르겠다. 언젠가 어느 호텔 게 얼핏 14% 정도라고 들은 것 같은데, 14%나 16%나 대단한 수치이긴 하다.
당연히 많이 먹으면 살이 찌는 관계로 조금씩 야금야금 먹다 보니, 한 통을 비우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아직 한 통은 오픈하지 않고 고이 모셔두었다.^^ 우리 식구는 성별에 따라 아이스크림 러버와 킬러로 나뉘는데, 아빠와 아들이 그 중 하나이고, 엄마와 딸은 다른 하나다. iami가 속해 있는 남성팀은 어디에 속할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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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돌약수터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방향, 그러니까 검단산의 주등산로를 오르는 이들에겐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애니고에서 출발해 10여 분을 걸으면 호국사란 절과 갈라지는 검단산 주등산로를 만나는데, 예서 10여 분 더 오르면 벤치 몇 개와 개울이 흐르는 쉼터가 나온다. 등산 처음 시작할 땐 쉼터까지 갔다 오는 게 일차적 목표였다.
쉼터에서 다시 10분쯤 올라가면 드디어 왼쪽으로 구부러지는 길이 나오고, 여기서 10분 정도 대여섯 번 방향을 돌리면 중간 또는 2/3 지점에 해당하는 곱돌약수터다. 그러니까 쉬지 않고 오르면 30분에서 40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리에 슬슬 근육이 붙기 시작할 땐 여기까지 왔다가 내려가기도 했다. 애니고에서 2.2km 올라온 거다.
물 한 바가지 떠서 마시면서 목을 축이면 발 아래로 하남시와 미사리 조정경기장이 시원하게 펼쳐지는데, 물론 거꾸로 해도 된다.^^ 한여름엔 비같이 흐르는 땀과 불같이 뜨거운 얼굴과 목을 약수터 옆 배수구의 시원한 물로 허푸허푸 씻어낼 수도 있는데, 이거 기분 끝내준다. 여기까지 오면 그동안 흘린 땀이 아까워서라도 잠시 쉰 다음 힘을 내 0.9km 남은 정상까지 갔다오게 마련이다.^^ 헬기장 지나 헐떡고개가 기다리긴 하지만 내 걸음으로 20분이면 정상을 밟을 수 있다.
오랜만에, 올해 처음으로 곱돌약수터에 가 보니 안내 기둥이 새로 생겼다. 왼쪽 기둥은 전에도 있었는데, 두 기둥 사이의 차이점이 모호하다. 이왕 새로 만들려면 현위치, 그러니까 곱돌약수터의 해발 높이를 표기하면 좋았을 텐데, 이런 거 만드는 친구들이 등산을 별로 하지 않는지 정작 중요한 높이는 안중에 없고 그저 거리만 표시했는데, 센스가 아쉽다.
지난 5년간 한 달에 두어 번씩, 그리고 그 전 10년은 연례행사로 검단산에 다니면서 한겨울에도 곱돌약수터가 언 걸 거의 보지 못했다. 참 물줄기가 시원하고 맛도 좋다. 한여름엔 일부러 2리터 빈 생수통 두 개나 5리터 짜리 한통을 배낭에 넣고 가서 물을 떠 오기도 여러 번 했다.
약수터 옆엔 벤치가 몇 개 있어 지친 등산객들의 허리와 무릎 그리고 발을 쉬게 만든다. 그 옆에는 시계와 온도계, 거울과 플라스틱 물바가지가 가지런히 자리잡고 등산객들을 반겨주는데, 지붕까지 있다. 산 중턱에서는 하나같이 요긴한 물건들인데, 다른 산 약수터들에도 있겠지만, 이 다섯 가지를 고루 갖춘 약수터는 별로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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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에 검단산을 가려는데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지나 등산로 초입에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줄잡아 30여 명은 돼 보였는데, 올라가는 이들이나 내려오는 이들에게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다.
이때가 점심시간은 지난 2시 반에서 3시 사이였으니까 누가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무료급식
같은 걸 하는 것도 아니었고, 하산길에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줄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려면 남녀가
다른 줄을 서야 하는데 섞여 있었으니 말이다.^^
세 시간 안팎의 등산을 마친 이들이 산길을 오르내리는 동안 바지와 신발에 묻은 먼지를 터는
기계를 이용하려는 행렬이었다. 아직 눈이 안 녹은 겨울 그늘 능선도 많이 남아있지만, 봄이 오기
직전의 햇볕 드는 산길은 먼지를 많이 날린다. 장갑을 벗어 툭툭 털어도 되지만, 같은 값이면 쉭~
소리와 함께 강력하게 먼지를 빨아들이는 흡입기를 쓰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공짜이니 몇 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다. 기계는 한곳에 네 개가 설치돼 있어 평소엔 그리
병목 현상을 일으키지 않지만, 휴일 오후의 대목엔 만원사례였다.
정상에 오른 다음엔 유길준 묘소 쪽으로 내려왔는데, 다섯 시가 조금 안 된 여기도 아까만큼은
아니어도 예닐곱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쉭~ 소리와 함께 흙먼지를 털어
내려는데, 먼지가 많이 묻었는지 다른 때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렸다. 등산의 수고와 피곤을 한꺼번에
씻어주는 착한 기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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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밥이나 면 말고 저녁으로 먹을만한 집음식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피자나 치킨도 좋지만 그런 건 시켜 먹어야 하는데, 얼마 전부터 좋은 메뉴가 생겼다. 로즈마리가 식구들 늦잠 자는 주말 브런치 메뉴로 종종 내다가 간혹 손님들이 오면 간편하게 애피타이저로 내 호평을 받는 퀘사디아(quesadillas)다.
또띠아는 코스트코 냉동 코너에서 40장 짜리 파는 것을 사다 주면 되는데, 처음엔 오븐에서 굽더니 요즘은 간편하게 후라이팬에 구워 내는 것 같다. 우리는 주로 야채와 닭가슴살을 넣어 먹는데, 불고기나 다른 고기류가 들어가도 좋을 것 같다. 따로 찍어 먹는 쏘스는 아직 없다.
한 달 전쯤 어떤 블로그를 보다가 부산에 미도어묵이란 오뎅 전문몰을 알게 돼 회원 가입하고 여덟 종류로 구성된 2만원대의 어묵 세트를 주문해 봤는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아 지난주에 다른 종합어묵 세트를 주문했다. 마트에서 파는 오뎅보단 맛이 좋았고, 오뎅국으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모짜렐라 치즈떡을 사은품 - 이런 데 현혹되면 지름신을 못 막는데^^ - 으로 준다길래 이참에 떡볶이 해 먹으려 1인분씩 포장된 떡볶이 쏘스 세트도 넉넉하게 주문했다. 떡볶이에만 아니고, 다른 반찬 만들 때도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생일 전후에 사용할 수 있는 1만원 할인 쿠폰도 있어 당.연.히. 기쁘게 사용했다.^^
떡볶이와 퀘사디아를 저녁으로 먹으니 입도 즐거웠지만,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박지민과 이하이의 진검 승부가 펼쳐질 KPopStar 시간이 박두해 급하게 커피 내려 TV 앞에 앉으니 바로 시작이다.^^ 박지민도 잘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이하이의 한판승이었다. 정말 요즘 애들, 노래 잘 한다. Let's gro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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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처음 집앞 검단산을 다녀왔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나가사끼 면 하나 끓여
먹은 다음 프로농구 빅게임이랄 수 있는 2, 3위를 달리는 KGC와 KT전 중계를 뒤로하고 2시 반쯤
혼자 집을 나섰다. 오후의 겨울산은 생각했던 것보다 춥지 않았는데, 그래선지는 몰라도 휴일
오후의 검단산은 등산객으로 넘쳐났다.
곱돌약수터까지 내쳐 오른 다음 1분간 휴식하고, 헐떡고개 앞에 이르렀다. 10분에서 15분을
헐떡거리며 올라야 정상에 진입할 수 있는 이 산의 난코스 중 하나다. 이럴 땐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게 장땡인데, 내 바로 앞에서 오르고 있는 이들 가운데 스피드가 나와 비슷한 이를 찾아 가까이 붙은
다음 그이의 발뒷굼치를 쳐다보며 걸어 올라가면 비교적 수월하게 이 코스를 오를 수 있다.
아직 도사가 되려면 멀긴 하지만, 그래도 등산에 재미를 붙인 지 5년쯤 되니 오늘 등산의
파트너로 삼을 만한 이를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마침 나와 비슷한 연배의 점잖은 양반이
보였다. 젊은 친구 하나가 그 앞에서 올라가고 있는데, 어째 조금 힘들어 하는 기색이 보인다.
표정과 숨소리 그리고 걸음 내딛는 소리로 알 수 있다.^^
내가 오늘 파트너로 점찍은 이는 예상대로 천천히 그러면서도 꾸준하게 발을 내딛으면서
젊은 친구 뒤를 따라가더니 천천히 추월하기 시작했다. 산에서는 추월도 다 때가 있고, 매너가
있는 법인데 이 양반도 그걸 아는 것 같았다. 조금 기다려주는 듯 하다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공간에서 앞서 가더니 조금씩 간격을 벌리기 시작했다.
간혹 아주 빠른 속도로 산을 타는 이들이 있다. 조금 과장해서 평지를 걷는 것보다 빠르게
산을 타는 이들이 있다. 타고난 체력에 오랜 산행 캐리어가 묻어나는 이들은 부럽긴 하지만
내 파트너가 될 순 없다. 쓸데 없는 오버 페이스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격이 돼 금세 숨이
차오르고 지쳐 떨어지게 만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이 양반의 발뒷굼치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더니 어느새 헐떡고개가
끝나가면서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능선이 펼쳐진다. 덕분에 오랜만의 등산을 어렵지 않게
마칠 수 있었다. 그이는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뒤를 따라 걷는 내게 좋은
가이드가 됐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나도 뒤에 오는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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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 동안 어머니께서 와 계셨다. 토요일 오전에 퇴촌 분원 나들이를 했다. 분원은 왕실의 그릇이나 도자기를 굽던 곳이다. 강 폭이 다른 곳에 비해 넓은 남한강은 꽁꽁 얼어 있었고, 팔당댐 너머로 예봉산이 보였다. 언 강 가까이 가 보니 속에서 탁 탁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뭘 드시고 싶냐고 여쭈면 늘 아무 거나 하신다. 알아서 모시고 가면 될 것을 괜히 여쭈었다.^^ 분원에 온 김에 붕어찜을 먹어보기로 했다. 운전하면서 본 플래카드 내건 집에 들어갔다. 이름부터 너무 튀는 것 같고 약간 현란한 기와와 각종 큼지막하고 서로 어울리지 않는 간판에 현수막까지 요란하게 걸려 있어 피할까 했으나, 딱히 아는 집도 없었다.
붕어와 장어, 쏘가리에 송어와 잡어까지 민물고기는 두루 내는 집이었다. 붕어찜은 20% 할인해 준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장어는 kg에 8만원, 한 관에 32만원이라는데, 관이란 단위는 오랜만에 들어본다. 몇 사람이 먹을 만한 양인지 모르겠다.
주문하고 20여 분 후에 붕어찜이 나왔다. 양념을 잘 했는지 붕어는 비린 맛이 거의 안 났다. 시래기가 엄청 많이 들어갔는데, 간이 잘 배어있으면서도 이상하게 짜질 않았다. 원래 밥 없이도 반찬이나 국물을 잘 먹기도 하지만, 밥 한 술에 시래기 몇 젓가락씩 집어먹었다.
짜지 않으면서도 시원했던 건 민물새우를 많이 넣었기 때문이었다. 뚝뚝 손으로 뜬 두툼한 수제비도 괜찮았다. 솥밥에 이어 나온 누룽지가 구수하면서도 입맛을 개운하게 만들어 주었다. 붕어찜은 어느 계절에 먹는 게 가장 좋은지 모르겠지만, 다시 추워진 영하의 날씨에 먹기에 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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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점심시간에 모락산 사인암에 올라 탁 트인 하늘을 보는데, 비행기가 지나갔는지 흰
꼬리가 길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또 한 대가 비행하면서 그 흔적에 접근하고 있었다. 평지에서도
볼 수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사방이 탁 트인 산 위에서 보니까 더 실감이 났다. 바로 앞이 낭떠러지인
바위 위에서 목을 젖혀 하늘을 계속 바라보는데 따르는 아슬아슬함에 조바심이 나긴 했지만.^^
조금 당겨 보았더니, 비행기 한 대가 막 앞 비행기가 남긴 꼬리에 접근해 도킹을 시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꼬리로 길게 흰 연기를 뽑아내더니 자신도 다른 비행기가 남긴 연기 속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몇 초 간격으로 셔터를 눌러댄 다음 내려와서 모니터로 보니, 서로 교차하는 모양새가
됐다. 조종사는 알았을까.
기종이 다른지, 하나는 꼬리가 굵고 살짝 구불구불한 면이 있는데, 나중 것은 가늘고 반듯했다.
둘 사이의 각도가 10도쯤 돼 보였다. 조금 인심 써서 30도쯤 만들어 주고, 조금만 일찍 교차해 둘
사이의 흔적이 좀 더 선명하게 남았으면 더 멋있었을 텐데, 하며 혼자 되지도 않는 그림을 그렸다.
실제로는 둘이 고도 차이가 있고 겹친 게 아닌데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거란 걸 알면서도.
2월, 하루 더 (3) | 2012.0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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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점심으로 갑자기 칼국수가 먹고 싶어졌다. 백색라면류는 요즘 많이 먹어 조금 입을 쉬고 싶었고, 밥보다는 면류가 먹고 싶었다. 동네 바지락 칼국수나 비빔국수집을 찾아 가는 것도 좋겠지만, 차를 몰고 가는 게 귀찮아 집에서 해 먹기로 했다.
다행히 칼국수면이 남아 있어 로즈마리가 멸치로 국물을 낸 다음 이런저런 고명을 얹어 냈다. 칼국수면 외에 조랭이 떡도 넣고, 고명 중엔 늙은 호박 썰어 넣은 것도 있어 이채로웠다. 해물도 들어가 구색을 맞췄지만, 아쉽게도 코스트코에서 사 온 냉동 해물 칵테일이라 없는 것보단 나았지만 깊은 맛을 내진 못했다.
보통보다는 곱배기에 가까운 양이었는데, 한 그릇 비우기가 만만치 않았다. 예전같으면 한 그릇 해치우고 반 그릇은 더 달래서 먹었을 텐데, 양이 약간 줄어든 것 같았다.^^ 그래도 집에서 둘이 해먹는 재미가 있어선지 한 그릇 먹고, 남비에 남은 면을 가져다가 마저 해치웠다.
반찬은 두 가지였는데, 훈제연어 남은 게 있어 그걸로 샐러드를 만들었는데, 면대접보다 큰 샐러브 볼에 담겨나와 저걸 어떻게 다 먹나 했지만, 막상 먹어보니 거의 다 먹게 됐다. 김치는 로즈마리가 담근 김장김치를 처음 오픈했는데, 잘 안됐다는 엄살과는 달리 괜찮게 됐다. 역시 김치는 처음 꺼낼 때 먹는 맛이 최고인지라 국수 한 젓가락 넘길 때마다 김치를 함께 집어 열 번 남짓 먹었으니 한 끼 분량으로는 요 근래 가장 많은 김치를 먹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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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요일 점심 때 사인암에 올랐는데, 거기서 내려다 보는 시원한 경치와 함께 늘
그 자리에 서 있어 잘 안 보게 되는 안내 문구에 눈이 갔다. 이 안내판을 처음 읽은 게 아닌데,
새삼스레 읽다보니, 한 단어가 반복해 나오는 걸 보게 됐다.
바위밑에 사람이 있으니(있을 수도 있으니 바위 위에서) 돌을 돌을 던지지 말라는 안내
멘트였다. 보자마자 직업병이 발동해 "누군가 교정을 잘못 봤군. 이런 공공 안내판은 좀더
신경써서 만들어야지.." 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과히 틀린 어법도 아닌 것 같았다.
중요한 사항은 강조해서 반복할 수도 있잖은가. 산에 올라온 사람들이 잘 안 읽고 무심코
넘어갈 수도 있으니 한 번 더 반복해 줌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면 이 안내문은 그리
틀린 것도 아닐 것이다. 나도 덕분에 처음부터 한 자 한 자 다시 읽어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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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조금 넘게 걸려 모락산 사인암에 오르면 눈앞에 보이는 크고 멋진 바위가 있는데,
처음엔 여기가 사인암인 줄 알았다. 나중에 보니 거의 같은 높이의 바위가 10미터쯤 옆에
있는데, 알고보니 그게 사인암이었다.
사인암에서는 과천과 안양 방향으로 관악산과 수리산 그리고 남산과 멀리 북한산 줄기가
보이는데, 이웃 사촌인 이 바위에서는 판교와 수원 방향으로 백운산과 바라산이 보인다.
어쨌든 이 바위도 크고 멋져 어떤 때는 둘 다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한다.
하도 많이 봤던 터라 새삼 무에 특별할 게 있으랴 했는데, 가만 보니 바위가 하나가
아니라 몇 개가 모여 있었다. 그리고 큰 바위들 사이로 깊이 틈새가 나 있었다.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였다. 사진으로는 작게 보이지만 틈새 길이가 족히 1미터는 넘는다.
그 틈새에서 조금 아래로 오면 그보다 작은 틉새가 하나 더 있다. 바위 반대쪽에서 보면
또 다른 틈새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산 중간 꼭대기의 큰 바위들 사이에 틈새가 벌어져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러고보니 큰 바위들은 멀리서 볼 때와는 다르게 매끈하기만 한 게 아니라 옆으로,
위아래로 주름이 가 있는 게 많았다. 어떤 건 조금 깊이 파이고, 주위가 조금 떨어져 나가
움푹 파인 곳도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아주 조금씩 조금씩 형성된 것들일 게다.
틈새가 있어도 워낙 크고 단단한 바위라 안전엔 거의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면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더 커진 멋진 틈새나 달라진 모양으로 어느 등산객의 눈에 다시 띄어 사랑을
받을지 누가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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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다니는 길이라 무척 익숙한데도 가끔 새로운 느낌이 드는 길이 있다. 점심 산책길에 늘
지나는 계원대 옆길 모락산 올라가는 초입은 폭이 1.5미터 남짓하고 한쪽이 경사면으로 돼 있다.
그래서 혹시라도 넘어지거나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철조망을 20미터 정도 깔아 놓았다.
초록색 철조망을 깔아놓으니 눈에도 띄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밟히는 감각도 있어 아무래도
미끄럼 방지 기능을 제법 한다. 왼쪽이 계원대 방향인데 낮고 완만한데 비해, 오른쪽 반도보라
아파트 쪽은 높고 경사가 제법 있어 이런 장치를 해 놓은 것 같다.
흙길 위에다 깔아놓다 보니 엉기거나 끊어지는 부분도 생겨 나도 몇 번 발이 잡혀 걸음을
멈춰야 하는 번거로운 일도 가끔 있었지만, 대체로 소기의 목적대로 안전 기능을 어느 정도
감당하는 것 같아 보인다.
세워놓아야 할 철조망을 땅바닥에 깔아놓으려니 아무래도 고정시키기가 쉽지 않아 군데군데
철굽을 박아 놓았다. 고정시키는 데는 딱이지만, 돌출돼 있다 보니 가끔 앞굼치가 걸려 넘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비가 오고 바람 불면서 쌓인 낙엽이 이리저리 옮겨다니기도 하고, 사람들이 사정없이 밟고
오르내리면서 어떤 부분은 상당 부분 흙속에 덮여 원래의 기능을 잘 못하게도 됐다. 그러나 다시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달라지면서 덮여 있던 흙을 쓸어내 원래의 모습을 보일 날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땅을 단단하게 다져주거나 평평하게 하는데 일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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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와 삼청동에서 점심을 먹고 차 마실 곳을 찾다가 인근에선 주차 가능한 카페가 쉬
눈에 띄지 않아 고개 너머 성북동 길가의 한 카페에 들어갔다. 제법 큰 카페였지만 간판이 눈에
띄지 않고 허름해 보이는 외관이어서 어떨까 하고 들어갔는데, 와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내 눈을 사로잡고 이 집에 대한 기대감을 마구 높여준 것은, 저렇게 칠판에 쓴 메뉴판이었다.
뉴질랜드 카페들이 많이 쓰는 기법(?)인데, 유럽풍이라고 들은 것 같다. 미국에서도 많이 봤고,
일본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요즘 우리나라 카페들도 이렇게 칠판글씨로 많이 적어놓는다고 한다.
이런 손글씨, 그 중에서도 색색깔로 쓴 분필 글씨는 확실히 인쇄된 폰트들보다 부드러워 보이고
정감을 자극한다. 적어도 내게는 수수해 보이면서도 뭔가 이 집만의 독특한 무엇이 있을 것 같은
기대를 갖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계절마다 메뉴를 바꾸거나 새로 선보일 때 쓱쓱 지워 칸을 마련한
다음 올려놓기 좋은 실용적인 스타일이다.
기분이 업되면서 로즈마리와 마리아에게 여기 들어오길 정말 잘했다며 말이 조금 많아진다.^^
두껍고 긴 나무 재질의 주문 데크와 고풍스런 벽돌 장식들, 그리고 오픈 주방의 적당히 분주해
보이는 풍경이 이국적인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이런 집에선 뭘 시켜도 맛있을 텐데, 이런! 우리는
방금 점심을 먹고 왔네! 파스타나 와플 시켜 커피와 먹기에 딱 좋은 분위기였다.
주일 오후 2시 반쯤에 들어갔는데, 손님이 제법 북적거리고 빈 자리가 몇 개 없다. 테이블과
의자들도 하나로 통일하지 않고 가지각색 다채롭다. 다닥다닥 붙여놓지 않아 숨통이 트이고,
여유가 느껴진다. 옛날 교실 같기도 하고, 낡은 집 분위기를 내면서도 적당히 세련된 인테리어도
사람들을 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슬로우 가든(Slow Garden)이란 이름에 걸맞게 이 집에 들어서면 시간을 잃어버릴 것 같다.
마리아가 시럽을 넣으러 갔다가 들었는데, 평일에 오면 훨씬 여유롭고 편하게 즐기다 갈 수 있다고
한다.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대학로, 삼청동, 이대 등 몇 군데 있다.
커피와 음식을 주문하는 곳 맞은편에 케이크 진열장과 케이크 만드는 곳(Cake Factory)이
따로 자리잡고 있다. 시카고에서 뉴질랜드 해인이와 두어 번 가 본 치즈케익 팩토리 스타일이다.
하나같이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들이 눈길을 끈다. 적어도 이 집에 두 번은 다시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한 번은 파스타와 와플 먹으러, 또 한 번은 케이크 먹으러.^^
친절하게도 케이크마다 이름과 가격을 붙여놨는데, 재료를 말하는 건지, 아예 케이크 이름
자체가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눈과 침샘을 더 자극한다. 그 중 다른 데서 보기 어려운
두 스타일이 눈에 들어왔다. 보는 것하고 실제로 먹는 것은 다를지 몰라도, 케이크 살 일 생기면
동선이 아니더라도 일부러 한두 번은 찾아올 것만 같다. 당장 25일이 둘째 생일이다.^^
우리가 앉았던 테이블 옆에 기둥을 가린 듯한 나무판들과 여닫거나 드나드는 것과는 별 관계가
없는, 인테리어 기능의 유리 문짝이 있었다. 고풍스럽다도 하기엔 좀 그렇고, 마치 일부러 청바지를
낡아보이게 만든 것 같이 중간중간 세워놓았다.
우리 셋은 커피만 마셨지만, 케이크도 많고, 다양한 음료 외에 만원대의 브런치 세트, 와플, 파스타,
치아바타 샌드위치, 샐러드 그리고 삼사만원대의 스테이크도 파는 것 같았다. 날이 조금 따뜻해지면
주일예배 마치고 점심 먹으러 오거나 차 한 잔 하기 딱 좋은 곳을 발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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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재작년 뉴질랜드 코스타에 갔을 때 의전국 간사로 섬겨준 마리아가 미국 가는 길에 한국에 왔다며 로즈마리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한국에서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바쁘게 보내는지 약속날짜가 주일 나들목교회 예배를 함께 드리고, 점심식사를 하는 것으로 잡혔다. 2월 첫주일, 오클랜드에서 보고 두 달만에 반갑게 만났다.
교회가 있는 신설동에 아는 집이 별로 없어 삼청동으로 향했다. 주차가 되는 집이 보이면 어디든 들어가기로 했는데, 주일 점심 때라 그런지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아 슬슬 걱정이 되던 차에 때마침 초입에 주차 안내원들이 호객하는 식당이 있어 무조건 들어갔다. 삼청칼국수였다.
언제나 생글생글인 마리아는 나뿐 아니라 로즈마리를 잘 따랐는데, 특히나 코스타 후에 1박 2일간 여행을 함께하면서 둘이 많이 친해졌다. 교회에서 함께 앉아 있자니, 양승훈 목사가 다가와 따님이냐고 물어왔고, 옆에 같이 앉았던 황병구 본부장도 누구냐고 물어올 정도로 눈에 띄었나 보다.
칼국수 세 가지에 떡갈비(6천원)와 감자전(8천원)을 시켰다. 손바닥만한 떡갈비가 익은 겉절이와 함께 바로 나왔다. 떡갈비를 두고 로즈마리는 함박스텍 같다고, 나는 햄버거 패키라고 농을 하는데, 마리아는 이번에 장흥에 가서 삼합(쇠고기, 키조개, 표고버섯)을 먹어봤다면서 이렇게 먹는 것도 괜찮다고 정리해 주었다.^^ 해물파전 대신 마리아가 고른 감자전도 바삭하게 잘 구어 나왔다.
메뉴를 살피던 마리아는 들깨 칼국수(8천원)를 먹고 싶었다면서 시켰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시킨 것 가운데 제일 맛있었다. 진하지 않고 약간 연한 듯한 맛이 누구에게나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로즈마리는 올갱이 칼국수(7천원)를 시켰는데, 면발이 푸른 게 시금치를 갈아 민 것 같았다. 조금 먹어봤는데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맛이었다.
나는 메생이전복칼국수(9천원)를 시켰다. 김가루나 파래처럼 보이는 게 메생이다. 전복은 달랑 하나가 들어 있었는데, 두 개가 있는 줄 알고 통크게 로즈마리에게 주어서 정작 나는 맛을 못 봤다.^^ 메생이가 들어가 시원했는데, 역시 메생이를 안 먹어본 이들은 약간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집 칼국수들은 맛을 떠나 일단 여성들에게 어울리는 양이었다. 그릇은 큰데, 칼국수 하나만 먹고 나오면 금세 출출해질 것 같았다. 가게와 동네 이름에 맑을 청 자가 들어가선지 국물은 대체로 맑았다. 사골국물에 끓인 칼국수를 크게 선전하는 걸로 봐서 그걸 먹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8천원 받을 칼국수 맛은 아니었는데, 맛을 떠나 음식값에 도심 주차료가 포함된 걸로 쳐주면 그런대로 합리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북촌을 걸어서 갈 때 일부러 들릴만한 맛집은 아니란 건데, 그도 그럴 것이 근처에 다른 칼국수집도 여럿 있고, 딴 음식점들도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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