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가 보낸 고사리
Posted 2011. 8. 3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
두어 주 전 미국에 사는 누이에게서 항공화물이 하나 배달됐다. 가로세로 40cm 정방형에 그리 무겁지 않은 상자였다. 뜯어보니 고사리 말린 게 한 뭉치씩 꽤 여러 개 들어 있었다. 그리고 송이 버섯 말린 것 조금하고 오메가3 두 병도 보냈다.
미국 사람들 안 먹는 크고 실한 고사리가 야산에 지천으로 자라 있는 걸 놓칠 리 없는 의지의 한국 여성들이 삼삼오오 달려가서 캐다가 삶아 말려 먹고, 고국에 있는 식구들에게 보내는 덕분에 우리도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로즈매리도 몇 달 전에 홍성에 깄다가 고사리를 캐 왔는데, 캐는 재미보다 삶아 말리는 품이 더 드는 노동이었다며, 누나가 이 정도 보내려면 꽤 힘들었을 거라고 한다.
고사리를 받으면 우선 고사리 나물을 해 먹는데, 이게 맛이 괜찮다. 요즘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중국산 농산물이 많이 들어오는데, 고사리도 중국산이 제법 되는 것 같다. 미국산이지만, 한국 여성이 가공한 거니까 반은 국산인 셈이어서(^^) 우리 식구들은 한 번에 두 접시 정도는 싹싹 비우고, 여기에 무채나 콩나물 하나 더한 다음 들기름 넣어 비빔밥을 해 먹을 때도 있다.
그리고 많이 해 먹는 게 육개장이다. 고사리가 많이 들어간 육개장은 언제 먹어도 맛이 있고 물리지 않아 이렇게 고사리 다발을 받으면 한솥 끓여서 두세 끼는 잘 먹는다. 요즘 같이 더운 날에도 육개장이 상에 오르면 땀을 흘리면서도 밥 한 공기 비우는 건 일이 아니다. 사골처럼 처음 끓인 건 영양 듬뿍으로, 두세 번 끓인 건 우려낸 진한 맛으로 입맛을 돋군다.
뭘 그런 걸 고생해서 따 오고 삶아 말려 보내냐는 고마운 인사에 그런 건 일도 아니라는 누이의 말엔 두고 온 식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듬뿍 담겨 있다. 가을엔 누이의 생일도 있어 이번엔 우리도 뭔가 보내야겠다고 필요한 거 없냐 물으면 으레 손사래를 치면서 없다고 하니, 묻지 말고 알아서 챙겨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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