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모르는 녀석들
Posted 2020. 11. 17.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11월도 중순이라 완연한 늦가을인데, 산길과 산책로에서 계절을 모르는지, 무시하는 건지 모를 꽃들이 눈에 띄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하나는 봄꽃이고, 다른 하나는 여름꽃인데, 어인 일로 늦가을에 피어나 지나가던 우리에게 우연히 포착됐으니 말이다. 지난 주일 아내와 남한산성 벌봉을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들 아래 노란 꽃이 피어 있었다. 어, 개나리처럼 생겼는데, 하니까, 함께 걷던 아내가 개나리가 맞다고 끄덕여주었다.
아니, 지금 계절이 어느 땐데 봄 개나리가 가을도 저물어가는 이 시절에 피어났지, 하면서 신기해 했는데, 녀석이 계절을 앞서간 겐지, 아니면 철 모르고 그냥 피어난 건지 모르겠다. 살다 보면 가끔 이런 기분 좋은 일이 선물처럼 생기나 보다. 우리가 자주 다니는 강변 산책로엔 역시 노오란 애기똥풀이 한 무더기 피어 있는데, 이건 여름철에 많이 보던 이름도 재밌는 네 잎 꽃이다. 둘 다 올 가을에 서둘러/뒤늦게 피어나 오가는 이들에게 써프라이즈 선물을 주려는 것 같았다.
제철이 아닌 때 피어난 두 꽃을 보노라니, 문득 이 친구들이 계절을 앞서가는 건지, 아니면 뒤처진 건지 구분이 잘 안 됐다. 둘 다 요즘 같은 기후 변화 세상에선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 같은데, 이렇게 철이 아닌 시절을 고른 게 자의 반 타의 반쯤 아니겠나 싶기도 했다. 자기 계절 못지 않게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는 자의였을 테고, 그런데 하필이면 이렇게 제철이 아닌 때 피어올라 고생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선 타의 아니겠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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