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정은 아니지만 씹어 먹을 만한 책
Posted 2010. 3. 2. 17:15,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
숨어 있는 고수
『1세기 관계적 교회』(미션월드)는 Rethinking the Wineskin을 번역한 책인데, 2006년에 나온 원서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같은 해에 바로 번역해 낼만큼 출판사측에선 기다리던 책인 것 같다. 그러나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의 존재는 여전히 별로 주목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랭크 비올라(Frank Viola)는 무명에 가까운 저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랭크 바이올라란 저자명으로 2003년에 대장간에서 나온 『교회가 없다』(Pagan Christianity)라는 책도 사실 같은 저자의 작품인데, Viola를 대장간에선 바이올라로, 미션월드에선 비올라로 옮겨 독자들을 잠시 헷갈리게 만들었다. (예배 순서, 설교, 교회 건물 등을 다룬 이 책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일독의 가치가 있는 숨어 있는 책이다.)
프랭크 비올라는 고등학교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이며, 여가 시간을 이용해 가정교회를 개척하면서 교회 생활 컨퍼런스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에겐 무척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Present Testimony Ministry>란 저자의 개인 홈페이지(www.ptmin.org)를 방문하면 10권의 책과 여러 가지 오디오 강의 CD와 테이프를 낸 이 분야의 숨어 있는 고수임을 짐작하게 한다. 널리 알려진 저자들의 책이 주는 유익도 놓칠 수 없지만, 이렇게 종종 변방에 숨어 있는 무명이지만 자기 분야에서 내공을 쌓은 저자들의 책에서 얻는 유익도 쏠쏠하기 때문에, 유명한 특정 저자의 책만 편중해서 읽지 말고 관심의 폭을 넓혀 많은 저자들을 알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신약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Wineskin(교회 구조)에 대해 다룬 책들은 읽기가 조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교회에 대한 고정관점을 사정없이 무너뜨리면서 재고해 볼 것(Rethinking)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말이 쉽지, 재고하는 일은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그것도 우리가 사랑하는 교회에 대해서라면 더 그렇다. 그래서 어떤 독자들은 조금 읽다가 금세 잘못 골랐다는 듯이 내려놓거나 심지어 불순한 내용을 다룬다면서 내동댕이치기도 하고, 일부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이런 책을 못 읽게 하려고 금서 목록 또는 기피 리스트에 넣기도 하는데, 이는 교회론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과 대치되는 듯한 일부 표현 때문에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해 본 이들이라면 쉽게 지적 자살을 감행하기보다는 조금 인내심을 갖고 좀 더 진지하게 읽어보는 자세를 기를 필요가 있다. 읽어보면 사실 별로 틀린 내용이 아니며, 폭 넓고 풍부한 관점을 배우면서 교회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성급한 대응이나 무조건적인 동의, 둘 다 바라지 않는다. 다만 독자들이 이 주제에 대해 기도하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115면)가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새 가죽부대(New Wineskin)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 책은, 좀 센 어조로 낡은 가죽부대(전통적 교회 구조)를 고수하지 말고 새 가죽부대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려는 새 가죽부대는 과연 어떤 것일까?
저자는 교회 집회(1장), 성만찬(2장), 가정집에서 모인 교회(3-4장), 교회의 리더십(5-6장), 사도적 전통(10장) 등에 대해 신약성경의 관련 구절들과 여러 책들에서 읽어볼만한 인용문들을 제시하면서 1세기 교회가 관계적 교회(relational church)였다는 데 독자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려 애쓴다.
할 밀러(Hal Miller)가 이 책의 머리말에서 잘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현대 교인들에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나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개념보다는, 하나의 조직이나 기관으로 인식된다. 현대 교회의 제도적 형태와 1세기 교회의 관계적 형태 사이에서 보이는 차이는 가히 충격적이라 할만하다.”(10면).
할 밀러가 누군지 잘 몰라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되는가? 그렇다면 이런 지적은 어떤가?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참 교회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본질을 상실한 채 그저 아기자기한 종교적 모임에만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27면). 유명한 마틴 로이드 존스가 한 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자는 현대 교회가 최초의 원형에서 얼마나 멀리 이탈해 있는지를 예시하려 다음과 같은 간 큰(?) 주장을 펼친다.
현대 개신교회 예배에서는 강단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모든 예배 순서들이 설교를 정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회중들은 집회(예배)를 설교의 질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설교 중심, 강단과 청중석 형태의 모임은 초대교회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29-30면)
이보다는 개방적이고 참여지향적인 “서로 함께함”(one-anothering, 신약성경에 58번이나 언급된다), 상호 권면(mutual edification)이 초대교회 집회의 가장 돋보이는 특징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리더십과 관련해서도 “진정한 영적 권위는 지위(status)가 아니라 그 역할(function)에 있다. 신약의 리더십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의 관점에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즉 외형적인 직위가 아닌 수건과 대야의 정신에서 발견될 수 있다.”(102면)는 조목조목 옳은 말씀을 들려준다.
다소 과격하지만 경청할 만한 생각
가죽부대를 재고하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을 포도주이다. 저자는 다소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가운데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이런 균형감각 때문에 저자의 주장이 더 빛을 발하는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포도주, 즉 성령 안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간과하면서 교회 구조인 가죽부대만 과도하게 강조하지 말자. 포도주에 대한 고려 없이, 적절한 가죽부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놓치는 일이다.…이와 동시에 하나님이 제정하신 가죽부대는 무시하고, 포도주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가죽부대가 간과되면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은 구체성이 전혀 없는 추상적 가르침에만 머무르기 때문이다. (151-2면).
당연한 결론으로 저자는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11장)라는 질문과 함께 독자들의 진지한 반응을 요구하면서 백화점 같은 대교회의 유행을 좇지 말고, 신비적 체험을 너무 강조하는 제3의 물결 회복운동을 주의하고, 리더십 형태에 약점을 보이는 셀 교회에 갇히지 말 것을 주문한다.
물론 “온전한 교회 회복운동을 제도권 교회 내부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무의미한 행동이다.”(231면) 같은 주장과 급격한 교회 패러다임의 전환(243면의 표 참조)은 한국교회 현실에선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매우 과격한 주장이다. 그러나 “교회를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관점에서 다시 보려는 의식적인 노력"(242면)을 하기 위해 “신약 저자들의 렌즈를 통해 성경을 새롭게 보면서 교회 개념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 … 교회는 갱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을 필요로 할 뿐이다.”(242, 245면) 같은 대목은 얼마든지 경청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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