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 뒷길 약수터
Posted 2018. 7. 29.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열돔 현상으로 35도를 훌쩍 넘기면서 집 안팎을 온통 펄펄 끓게 만들었던 지난주 토요일 오후 이열치열하려고 동네산 검단산을 올랐다. 뜨거운 아스팔트 길을 통과해야 하는 샛길 산행 대신 초입부가 완만하지만 길어 다소 지루한 유길준 묘역을 택해 꾸역꾸역 올라가 쉼터에 이르렀다. 조금 쉬면서 숨 좀 돌린 다음 전망대까지 갔다 내려올 요량이었다.
벤치에 앉아서 록산 게이(Roxane Gay)의 『헝거』(Hunger: A Memoir of My Body)를 30여분 읽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 전부터 이정표에 써 있는 1.5km 거리에 약수터가 있다는 게 흥미로웠지만 정상 가는 방향이 아니어서 지나치곤 했는데, 한 번 가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이정표 두 개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슬슬 걷기 시작했다.
오, 나이스! 생각보다 길이 좋았다. 등산로라기보다는 산 허리를 감싸고 있는 둘레길 같았다. 넓은 길은 아니었지만, 걷기에 딱 좋고 주위 풍경도 좋은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동안 다니던 A코스(애니고-곱돌 약수터-헐떡 고개), B코스(유길준 묘역-전망대), C코스(산곡 방면) 주등산로들에서 보던 풍경과는 다른 숲길이 펼쳐지면서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거의 오르내리막이 없는 평평한 길을 기분 좋게 10여분 정도 걷자 큰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약수터가 나타났다.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굵은 파이프관을 통해 시원한 물이 흐르고 있었고, 예전에 쓰던 묵직한 스덴 대야가 물받이통을 대신하고 있었다. 물줄기는 아주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았는데, 손을 대 보니 무척 시원했다.
윗쪽에 서 있는 안내판은 관리를 안 한듯 오래된 옛날 스타일이었다. 2003년에 세워 놓았는데,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최근엔 수질 관리를 안 하고 있는듯 음용 가능 표시가 안 보였다. 메인 등산로에 있는 약수터라면 관리를 했겠지만, 등산객들 가운데 이 약수터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고, 이용객도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 방치해 둔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옆에 또 다른 약수터가 있었다. 여긴 배수관 대신 호스로 연결돼 있었는데, 처음 것보다 물줄기가 약했지만, 시원하긴 매한가지였다. 물병의 물이 남아 있어 마시진 않고 손과 얼굴만 씻었는데, 둘 다 급할 땐 요긴하게 쓰일 수 있겠다 싶었다. 이런 명당 자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지, 해먹을 걸어놓고 한여름 열기를 식히면서 오수를 즐기는 이가 있었다. 제대로 된 약수터 풍경이었고, 나도 뜻밖의 좋은 발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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